2018년 tvn에서 방영한 〈크로스〉는 단순한 메디컬 드라마가 아니다. 생명을 다루는 의학의 세계에 복수라는 인간의 본능적 감정을 덧입혀, 선과 악의 경계를 치밀하게 해체한 작품이다. tvN이 선보인 이 작품은 “의사는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명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주인공이 그 신념을 깨트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냉철한 의학적 지식과 인간적인 분노,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의사의 내면을 정교하게 그려내며 시청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메디컬 드라마의 특유의 리얼리티와 범죄 서스펜스의 밀도를 절묘하게 결합한 이 작품은 ‘생명을 다루는 복수극’이라는 독특한 장르적 실험을 보여준다. 수술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피와 눈물, 죄책감이 뒤섞이며, “의사는 어디까지 인간일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고민이 서사 전체를 지배한다.

주요 줄거리
주인공 강인규(고경표)는 어린 시절 끔찍한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그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범인은 감옥에서조차 특별한 의료 혜택을 받으며 살아있다. 그는 세상의 불의에 치를 떨며, 오직 복수를 위해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인규에게 의술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복수를 위한 완벽한 무기였다. 의대 수석 졸업 후 교도소 의무관으로 들어간 그는 아버지를 죽게 만든 범인에게 차가운 미소로 주사기를 꽂는다. 그러나 단순한 응징의 쾌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의사로서의 윤리와, 아버지를 위해 복수해야 한다는 인간적인 분노가 충돌하면서, 그의 내면은 점점 무너져간다. 그 앞에 등장한 인물은 한재준(조재현)이다. 한재준은 대형병원의 권력자이자 외과 명의로, 겉보기엔 완벽한 신사지만, 그가 감추고 있는 과거는 결코 깨끗하지 않다. 그는 병원을 자신의 제국처럼 다루며, 환자의 생명보다 정치적 이익과 명성을 우선시한다. 인규는 그가 바로 자신이 복수해야 할 진짜 대상임을 알게 되고, 다시 한번 ‘의사로서의 손’을 피로 물들이기로 결심한다. 그 과정에서 고지인(전소민)은 인규의 마음을 서서히 녹이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녀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며, 인규가 잃어버린 인간성을 일깨운다. 하지만 복수의 불길 속에서 그녀의 따뜻한 진심조차 닿지 못할 때, 시청자는 비로소 이 드라마의 본질이 단순한 ‘복수극’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캐릭터 소개 및 매력
강인규 (고경표) — 천재적인 의학 지식을 가진 인턴이지만, 그의 눈빛 속에는 냉정한 결의가 숨어 있다. 그는 생명을 살리면서도, 동시에 또 다른 생명을 파괴한다. 인규의 가장 큰 매력은 냉철한 복수자와 상처 입은 인간 사이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고경표는 섬세한 감정 연기와 깊은 눈빛으로, 인간의 양면성을 완벽히 구현해 낸다.
한재준 (조재현) — 의학의 권위자이자, 의료계의 절대 권력. 그는 의술을 신처럼 여기는 동시에, 자신의 손으로 사람의 생명을 조종하려 한다. 그의 악함은 전형적인 악역의 그것이 아니다. 그 또한 누군가를 위해, 혹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행동했지만, 그 결과가 타인의 삶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적이다. 조재현은 권력에 중독된 인간의 오만함을 절제된 연기로 표현한다.
고지인 (전소민) — 순수하고 따뜻한 내과 의사. 그녀는 병원 내에서 환자 중심의 진료를 고집하지만, 현실의 벽에 번번이 부딪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 곁을 지키며, 인규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다. 그녀는 이 드라마의 감정적 구심점이자, ‘의사란 결국 사람을 위하는 존재’라는 신념의 상징이다.
명장면 & 명대사
“의사의 손이 피로 물들었다고 해서, 그가 악인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손이 누구를 위해 쓰였는지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이 대사는〈크로스〉의 주제를 압축한다. 의술이란 중립적 도구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의사의 마음에 따라 생명은 구원될 수도, 파괴될 수도 있다. 이 한 줄은 시청자에게 ‘정의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철학적 울림을 남긴다. 또 다른 명장면은 인규가 자신의 복수로 인해 한 생명을 잃게 되는 순간이다. 그는 처음으로 주저하며, 처음으로 울었다. 그 눈물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세상과 닮아버린 자신을 깨닫는 절망이었다. 그 장면은 시청자에게 ‘진정한 의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
결론 - 의술, 복수, 그리고 인간의 한계
〈크로스〉는 단순히 ‘복수하는 의사’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인간이 가진 분노와 정의감이 얼마나 위험하게 뒤섞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의사가 복수를 위해 칼을 쥐는 순간, 그 칼은 더 이상 수술 도구가 아니라 무기가 된다. 그러나 그가 눈물로 깨닫는 것은, 진정한 정의란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데 있다는 사실이다. 이 드라마는 의학 드라마의 한계를 넘어,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정면으로 다룬다. 현대 사회에서 의료는 점점 기술화되고, AI와 자동화가 의사의 손을 대신하지만, 결국 생명을 살리는 건 ‘진심’이라는 메시지가〈크로스〉의 핵심이다. 냉철한 수술 장면 속에서도, 그 손끝에는 여전히 인간의 따뜻함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인규는 더 이상 복수의 칼을 들지 않는다. 그는 환자의 손을 잡고 말한다. “이제는 살리고 싶습니다.” 그 한마디는 의사로서의 참된 구원,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회복을 상징한다.〈크로스〉는 복수의 이야기이자, 결국 용서의 이야기다. 의료라는 차가운 세계 속에서도 인간의 따뜻한 온기를 되찾게 만드는, 한국형 메디컬 드라마의 진정한 정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