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동은 언어, 사회성, 감각 조절뿐 아니라 시지각 처리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지각은 단순히 ‘눈으로 본다’가 아니라, 뇌에서 시각 정보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학습과 일상생활에 매우 중요한 기능입니다. 본 글에서는 자폐 아동의 시지각 문제 유형과 그로 인한 학습 및 행동상의 어려움, 그리고 실질적인 개입 전략을 전문가의 시각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자폐 아동과 시지각: 눈으로 본다는 것의 의미
우리는 흔히 “눈이 좋다”는 것을 시력(visual acuity)으로만 판단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상생활과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시력이 아니라, 눈으로 본 정보를 뇌가 얼마나 정확히 받아들이고 해석하는가, 즉 시지각(visual perception)의 문제입니다. 시지각은 문자 인식, 도형 구분, 위치 인식, 거리 감각, 공간 판단 등 다양한 시각 정보 처리 능력을 포함하며, 이는 아동의 읽기, 쓰기, 퍼즐 맞추기, 공 던지기, 정리 정돈 등 매우 많은 기능에 관여합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를 가진 아동은 단순한 시력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시지각 처리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많은 자폐 아동이 도형을 복사할 때 위치가 틀리거나, 글자를 쓰면서 줄을 벗어나고, 눈과 손이 따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눈으로 본 정보’를 뇌에서 정교하게 처리하고, 그것을 신체 운동으로 정확히 반영하는 데 문제가 있음을 나타냅니다. 시지각 문제는 자폐 아동의 학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글자 모양 구분, 방향성 이해, 시각적 주의력 부족 등으로 인해 읽기와 쓰기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이는 학업 수행의 좌절감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회피 행동이나 공격적 반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좌우 구분이 어려운 아동은 교실 내에서도 방향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며, 다른 아이들과의 협력 활동에서도 혼란을 겪게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시지각 문제를 단순한 ‘주의력 부족’이나 ‘미숙함’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정확한 시지각 평가를 통해 아동의 인지적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맞춤형 개입을 진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서론에서는 시지각의 개념과 자폐 아동에게 흔히 나타나는 문제 유형을 설명하고, 이후 본론에서는 구체적인 평가 도구와 치료 전략을 소개합니다.
시지각 평가도구와 치료 적용 전략
자폐 아동의 시지각 문제를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개입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평가와 치료 계획이 필요합니다. 시지각은 뇌의 복잡한 정보 처리 과정이기 때문에, 단순한 시력 검사로는 정확한 진단이 어렵습니다. 아래에서는 실제로 임상에서 활용되는 대표적인 시지각 평가 도구와 개입 전략을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1. TVPS-3 (Test of Visual Perceptual Skills)
TVPS-3는 시지각 능력을 7가지 하위 영역으로 나누어 평가하는 도구로, 비운동성 시지각(즉, 눈으로 보고 해석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데 적합합니다. 하위 항목은 시각 구별, 시각 기억, 공간 관계, 형태 항등성, 시각 연속, 도형 완성, 도형 근사성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폐 아동이 어느 영역에서 강점 혹은 약점을 가지는지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각 구별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경우 유사한 글자(예: b와 d)를 혼동하거나, 시각 기억이 약한 경우 한 번 본 단어를 금세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2. VMI (Beery-Buktenica Developmental Test of Visual-Motor Integration)
VMI는 시지각과 운동 통합 능력을 동시에 평가하는 도구로, 도형을 따라 그리기 등의 활동을 통해 눈과 손의 협응 능력을 측정합니다. 자폐 아동은 도형의 전체 구조를 인식하지 못하고 세부 요소에 집착하거나, 손의 미세 조절이 부족하여 정확하게 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도구는 실제 쓰기 활동과 연계해 매우 유용하게 활용됩니다.
3. 감각 통합치료와 시지각
자폐 아동의 시지각 문제는 감각 처리의 전반적인 어려움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감각 통합치료를 병행하면 시지각 훈련의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네 타기, 터널 통과, 공 던지고 받기 같은 활동은 전정감각과 고유감각을 자극하며, 시각-운동 통합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습니다.
4. 시지각 치료 전략 예시
- **시각 추적 훈련**: 움직이는 물체를 눈으로 따라가며 주의 집중력을 향상하는 활동 - **도형 복사 및 색칠 훈련**: 선 안에서 색칠하기, 동일 도형 복사하기 등 - **퍼즐 맞추기**: 도형 완성과 공간 인식을 동시에 훈련 - **좌우 방향 훈련**: 화살표 따라가기, ‘왼손-오른손’ 짝 맞추기 등 - **점점 사라지는 그림 기억 훈련**: 시각 기억력 강화
5. 환경 조정
시지각이 약한 아동에게는 교실 좌석 위치, 조명, 책상 높이, 학습지 디자인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불필요한 시각 자극이 많은 환경에서는 정보 과부하로 주의력이 산만해질 수 있으므로, 단순하고 구조화된 학습 환경이 효과적입니다. 이처럼 시지각 개입은 아동의 강점을 활용하면서 약점을 보완하는 균형 잡힌 전략이 필요합니다. 치료사는 아동의 반응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훈련 내용과 강도를 조절해야 하며, 부모와 교사와의 협업을 통해 일상에서도 시지각 향상을 위한 활동이 연계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시지각 개입은 자폐 아동의 학습 문을 여는 열쇠
자폐 아동의 시지각 문제는 단순히 글자를 잘 못 읽거나, 도형을 헷갈려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며, 학습 능력뿐 아니라 정서 안정, 사회성, 자기표현 능력에도 연결됩니다. 따라서 시지각 개입은 단기적인 치료가 아닌, 아동의 전반적 발달을 위한 핵심적인 중재 전략으로 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지각 훈련이 아동에게 부담이 되지 않고, 자연스럽고 반복적으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치료실에서만 하는 단발성 훈련보다는, 가정이나 교실에서도 유사한 활동을 통해 반복 학습이 이뤄지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도 그림 따라 그리기, 좌우 방향 게임, 퍼즐 맞추기 등을 즐겁게 반복하면서 아동의 시지각 기능을 향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폐 아동의 특성상 반복과 예측 가능한 구조를 선호하기 때문에, 시지각 개입 역시 단계적으로, 규칙적으로, 긍정적인 피드백과 함께 제공되어야 합니다. 성취 경험을 통한 자기 효능감 향상은 아동의 전반적인 학습 동기와 정서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시지각 개입은 단순히 ‘학습 능력 향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아이가 세상을 보다 명확히 인식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으며,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세상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곧 세상과 연결되는 첫 번째 문을 여는 일입니다. 자폐 아동에게 그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시지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따뜻한 접근입니다.